카멜레온의 항변/ 안희환

 

 

변덕이라 날 욕하겠지만

내겐 변덕이 아니었습니다.

모진 목숨 살기 위한 수단

그렇게 주변에 나를 녹여

사나운 짐승을 피했을 뿐.

 

나의 색을 잃어버린 날들

즐기기 위한 눈속임이라

미리 단정 지은 말 한 마디

다 아는 듯 말하고 있지만

상대의 서러움을 모르지요.

 

매달린 다리의 흔들림이

바람 앞의 나뭇잎 같이

당신들 눈에 고와보여도

그 역시 생을 위한 몸부림

평생을 바꾸며 살았지요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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축복과 형벌, 그리고 불행/ 안희환

 

 

한 사람에게는 축복

상대에게는 그 사람이 형벌.

상대를 축복이라 여긴 사람이

상대에게 자신은 축복이 아닌

형벌뿐이었음을 알았을 때

그는 축복을 안고서도

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다.

 

큰 축복이라 여기면 여길수록

더욱 큰 슬픔이 밀려들어

사그라진 꽃잎처럼 흐느적

한 올 한 올 땅에 떨어지는 생명

무엇을 할 지 몰라 당황한다.

그대로 사라짐이 상대에게

죄의식을 줄 줄 알기에 더욱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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슬픈 노래가 터져 나올 때/ 안희환

 

 

즐거운 노래만 부르려 했는데

슬픈 가락이 입가에 맴돌아 나와

수양버들의 어깨가 처져버렸다.

처음부터 휜 가지였다는 건 거짓,

노래 따라 어깨가 굽은 것이다.

 

하늘이 맑다는 것도

바람이 서늘하고 상쾌하다는 것도

활기찬 벗들이 모였다는 것도

하는 일이 잘 풀린다는 것도

곡조를 바꾸지 못하는 그런 날

슬픈 노래는 운명처럼

성대를 타고 올라와 흐른다.

 

부르다 지쳐도 흥얼거리는 그런

기분에 겨운 노래 이상일 때

그 순간 필요한 건 너의 고운 음성

죽은 대지에 뿌린 생명의 물로

파릇한 싹이 살그머니 고개 든다.

그런데 지금 너의 음성이 없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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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끼줄/ 안희환

 

 

비비 꼬아 아프게 할 때

흩어지는 부스러기.

먼지가 함께 일어나면

바스락거리는 신음소리로

거친 항의를 한다.

 

그렇게 겪는 통증이란 게

유독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,

너나없이 모두가 겪는

과정임을 알면서도

옆을 바라볼 여유가 없지.

 

하나가 되어 굵어지고

튼튼한 덩어리가 되었을 때

모두가 함께였음을 알고

너와 나의 고통 속에

함께 강해졌음을 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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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질없는 물주기를 멈추고/안희환

 

 

아직 어린아이 같았을 때

아이처럼 품에 안고

화분에 물을 주듯

사랑을 부었어야 했는데

철 지난 듯 시든 나무

물을 뿌려도 시들하다.

 

기회의 앞엔 갈퀴가 있고

기회의 뒤는 미끄럽다더니

지나간 것을 잡으나

간단히 빠져나가

저 멀리 달음질친다.

 

내 안에 있으니 이미

품을 떠난, 커버린 아이

메마른 팔 다리를

어떻게 보상해야 하는지

부질없는 물주기를 그치고

바닥에 주저앉아 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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익숙했으나 이젠 익숙하지 않은/안희환

 

 

늘 혼자였지.

넓은 들판 한 복판에서도

강 따른 긴 여행에서도

주먹밥을 입안에 움켜 넣을 때도

곁엔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지.

 

처음 만났을 때

혼자만의 삶에 익숙하였기에

노골적으로 표현한 귀찮음

그댄 많이 힘들어했었지.

그래도 다가와 말을 걸었지.

 

하나보다 더 나은

둘이라는 것을 알아가면서

오히려 외로움이 무엇인지

알게 된다는 것은 희한한 일이지.

그대 없는 하늘은 먹구름 찼지.

 

그래놓고는 왜

그대는 떠나려 하는 것인지?

이전에 익숙하던 혼자가

이젠 익숙하지 않은 혼자임을

그토록 잘 알고 있으면서도..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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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수깡의 고집이 밉다/안희환

 

 

수수깡의 빈 곳엔

바람도 들어가지 않는다.

비워두고 바람마저 용납 못하는

붉은 아픔은 무엇일까?

때로 허리 꺾은 수수깡의 울음

속에서 나를 본다.

 

지나가는 오소리의

발자국소리라고 말하지 말라.

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

뒤집어봐야 무의미할 뿐

수수깡의 설움은 그대로

수수깡의 설움으로 남아야 한다.

 

잎이 다 떨어진

허전한 옆구리에 스쳐가는

바람을 안에 들이고

잠시 외로움을 피해도 되련만

끝내 마음을 걸어 잠근

수수깡의 고집이 밉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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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는 게 그런 거지 뭐/ 안희환

 

 

저리도 높은 산 봉우리

그만큼 깊은 골짜기

눈부시게 밝은 만큼

짙어지는 그림자를 보지.

 

다 좋을 순 없는 게야.

높을수록 추락은

두려운 법이고

그렇다고 밑바닥에

웅크리며 살 수는 없고

 

꼬인 실타래처럼

풀기 어려운 인생살이

나 또한 너 또한

다 그렇게 살아가지.

 

사는 게 그런 거지 뭐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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빈 공간에서의 두려움/ 안희환

 

 

빈 공간엔 날 해할 사람도 없는데

빈 공간에 홀로 있는 게 두려운 건

빈 공간에서야 만날 수 있는 어떤

두려운 존재가 있어서인 걸까?

 

어쩌면 빈 공간은 거울과 같아서

자신의 또 다른 측면을 보이고는

낯선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라

도망가고픈 마음을 느끼게 하는지도...

 

그도 아니면 껍데기뿐인 자신의

실상이 형체를 이루어 나오게 하는

어떤 신기한 현상이 있는지도 모르지.

그처럼 빈 공간은 부담스런 존재지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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섬세함이 구속처럼 여겨진다면/ 안희환

 

 

네 라고 짧게 끊어 대답했지.

그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

그대의 억양 속에서

난 기뻐하거나 슬퍼했지.

 

이상하다고 해도 좋아.

그러나 알 수 있었는데

아닌 척 하면 거짓이지.

따듯한 혹은 차가움의 느낌.

 

늘 민감하게 재곤 하는

섬세함이 구속처럼 느껴졌나?

내가 울고 웃을수록

그대는 감정을 차단해버렸지.

 

무엇이 그댈 편케 하는지

알고 있어도 어쩌지 못해

답답해하는 바보 하나.

그냥 눈 감고 받아주시게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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